1. 유전적 탈모의 시작
물려받은 머리카락의 운명
탈모는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 생기는 현상이 아니라, 유전적 요인이 강하게 작용하는 복합적인 생물학적 과정이다.
사람의 머리카락 수와 굵기, 성장주기, 모낭의 수명 등은 이미 DNA 속 유전자 조합에 의해 상당 부분 결정된다.
특히 남성형 탈모의 경우 ‘안드로겐성 탈모(Androgenetic Alopecia)’라 불리며, 모낭이 남성 호르몬(안드로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유전적 성향 때문에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핵심적으로 작용하는 유전자는 AR 유전자(Androgen Receptor gene)로, 이는 X 염색체에 위치한다.
즉,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가 탈모의 발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AR 유전자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남성호르몬의 대사 산물인 DHT(Dihydrotestosterone)가 모낭 수용체에 결합하여 모낭의 크기를 점점 줄이고 머리카락을 가늘게 만든다.
이러한 변화가 장기간 지속되면, 결국 머리카락이 빠지고 새로운 털이 자라지 않는 상태, 즉 탈모로 이어진다.
2. AR 유전자와 DHT의 관계
머리카락을 약하게 만드는 호르몬 반응
탈모의 대표적인 원인 물질로 알려진 DHT는 테스토스테론이 5α-환원효소(5-alpha reductase)에 의해 변환된 형태다.
이 효소와 DHT의 상호작용이 활발할수록 모낭은 수축하고, 모발은 성장기를 유지하지 못한 채 퇴행기로 접어든다.
특히 이 과정은 AR 유전자의 감수성 수준에 따라 달라지는데, 같은 양의 DHT가 존재하더라도 AR 유전자의 활성도가 높은 사람은 더 빠른 탈모를 경험한다.
흥미롭게도, AR 유전자의 특정 변이형을 가진 사람은 모낭이 안드로겐에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 때문에 같은 환경에서도 누군가는 풍성한 머리를 유지하고, 다른 사람은 빠르게 탈모가 진행되는 것이다.
여기에 추가로 작용하는 유전자로는 SRD5A1, SRD5A2, EDA2R, HDAC9 등이 있으며, 이들은 각각 호르몬 대사, 모낭 구조 유지, 염증 반응 조절에 관여한다.
결국 탈모는 단일 유전자의 문제가 아니라 다수의 유전자가 서로 상호작용하는 다유전자성 질환(polygeneic trait)으로, 유전자 하나를 억제한다고 해서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여러 유전적 경로를 동시에 제어하는 약물이나 유전자 기반 치료법을 연구 중이다.
3. 남성과 여성의 탈모 유전 차이
X 염색체와 호르몬의 상호작용
남성의 탈모는 대개 이마와 정수리부터 시작되어 점차 진행되는 형태를 보이지만, 여성의 경우 전반적으로 머리숱이 줄어드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 차이는 단순히 호르몬 농도뿐 아니라 유전적 발현 양상에서도 비롯된다.
남성은 X 염색체를 단 하나만 가지고 있으므로, 어머니로부터 받은 AR 유전자 변이가 곧바로 발현된다.
반면 여성은 X 염색체가 두 개이므로, 한쪽에서 탈모 유전이 있더라도 다른 한쪽이 이를 보완해 탈모 진행이 상대적으로 느리다.
그러나 여성도 폐경 이후 에스트로겐 분비가 급격히 줄어들면, 안드로겐의 상대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탈모 유전이 활성화될 수 있다.
이 시기의 탈모는 ‘여성형 안드로겐 탈모(Female Pattern Hair Loss)’라 불리며, 유전적으로는 남성형 탈모와 유사한 경로를 따른다.
최근에는 GWAS(Genome-Wide Association Study, 전장유전체연관분석)를 통해 여성형 탈모에 관여하는 새로운 유전자 후보들이 다수 밝혀지고 있으며, 이는 성별에 따른 맞춤형 치료법 개발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4. 유전자 검사와 미래의 탈모 치료
맞춤형 의학의 시대
최근 들어 개인의 유전적 특성을 분석하여 탈모 위험도를 예측하는 유전자 검사 서비스가 상용화되고 있다.
이 검사는 타액이나 구강 점막 세포를 통해 DNA를 채취한 후, AR, SRD5A2, EDA2R 등 탈모 관련 유전자들의 변이를 분석한다.
결과적으로 ‘탈모 가능성’, ‘진행 속도’, ‘예방 약물 반응성’ 등을 미리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정보는 단순한 예측을 넘어, 개인 맞춤형 치료 전략(personalized therapy)을 세우는 데 활용된다.
예를 들어, 5α-환원효소 억제제(피나스테리드, 두타스테리드 등)에 대한 반응이 낮은 유전자형을 가진 사람은 미녹시딜 계열의 혈관확장제를 병용하거나, 새로운 유전자 치료 접근법을 고려할 수 있다.
미래의 탈모 치료는 단순히 모낭을 자극하는 수준을 넘어, 유전자 조절 기술(gene modulation therapy)을 통한 근본적 해결로 발전할 전망이다.
CRISPR-Cas9 같은 유전자 편집 기술이 모낭 줄기세포의 유전자 발현을 조정함으로써, 모발 재생의 영구적 회복을 목표로 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언젠가 “탈모는 유전이라 어쩔 수 없다”는 말이 과거의 표현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
'건강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환절기 감기 – 면역이 흔들릴 때 찾아오는 계절성 질환의 모든 것 (0) | 2025.10.20 |
---|---|
ADHD, 어떻게 인지하고 확인할 수 있을까? (0) | 2025.10.14 |
공황장애, MRI로 확인할 수 있을까? (0) | 2025.10.13 |
공황장애 초기 증상과 대처법: 조기 대응이 중요한 이유 (0) | 2025.10.13 |
림프가 막히면 어떤 일이 생길까? – 부종, 면역 저하, 그리고 관리법까지 (0) | 2025.10.09 |
레티놀(retinol) – 피부가 어려지는 비밀 성분의 모든 것 (0) | 2025.10.08 |
불면증과 우울증의 관계 – 잠 못 드는 밤이 보내는 신호 (0) | 2025.10.08 |
편도결석 예방과 관리 방법 – 입냄새의 숨은 주범, 이렇게 관리하세요 (0) | 2025.10.08 |